동서양의 판도를 바꾸다 - 알렉산더의 가우가멜라 전투
페이지 정보
작성일 23-05-22 12:47
본문
Download : 동서양의 판도를 바꾸다.hwp
지속적으로 페르시아(동양)에 공격에 위협을 받던 그리스(서양)가 약자적 위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건이며, 서양이 동양의 culture를 흡수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전투로 인해 동서양 culture의 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페르시아(동양)에 공격에 위협을 받던 그리스(서양)가 약자적 위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건이며, 서양이 동양의 문화를 흡수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Ι. 선정이유
동서양의 판도와 전쟁, 가우가멜라 전투, 역사레포트
전투의 배경은 이수스 전투(B.C 333년)로부터 스타트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수스는 지금의 터키 동남부 해안가의 모든 지역을 석권할 수 있는 중심지였다. 이 전투에서 다리우스의 10만 여 군사가 알렉산더의 4만여 군사에 대패한 후, 이쪽 일대의 모든 재해권을 잃어버린다.
레포트 > 인문,어학계열
2) 전투 개시
Ⅱ. 가우가멜라 전투
4. 전투의 history적 평가
1) 전투 이후 상황
이러한 전략(戰略) 적 이점을 포기하고 다리우스 3세는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십수만의 군사를 일으켰다.
1. 전투의 배경
동서양의 판도를 바꾸다 - 알렉산더의 가우가멜라 전투
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계속 남하하여 지금의 시리아, 이스라엘 일대를 점령하고 이집트까지 고작 2년여 만에 점령하게 된다 방대한 영토를 2년여 만에 다 점령한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으나 계속된 전투로 그리스 군은 지쳐있었다.
순서
알렉산더를 생각하면 페르시아 군을 격파한 이수스 전투를 생각하기 쉽지만, 필자는 이수스 전투보다 더 극적인 전투가 가우가멜라 전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작 4만 여명의 군사로 방대한 지역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전투가 장기화된다면 그 군사로는 10~20만 명에 달하는 페르시안 군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