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조 집성
페이지 정보
작성일 22-12-05 13:46
본문
Download : 고시조 집성.hwp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 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省略)
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이조년(李兆年), 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따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민족생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시형들은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곧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역사(歷史)】 〈고대시조〉 시조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그러나 시조만은 700∼800년을 두고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문학이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처음 한 산문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되었다.
고시조 집성
순서
,인문사회,레포트
시조모음집22
시조모음집22 , 고시조 집성인문사회레포트 ,
설명
레포트/인문사회
Download : 고시조 집성.hwp( 41 )
한국 고유의 정형시. 시조 이전의 모든 시형(詩型)은 시조의 발생을 위한 준비이고, 시조 이래의 시형들은 시조에서 분파한 형식이라 할 만하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